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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x08 까지의 전개, 복선 및 결말에 대한 언급이 충만하게 들어있습니다.)
1.
<프리즌 브레이크>는 폭스 TV에서 방영중인 미국 드라마다. 이 간단한 개념 정의를 통해 우리는, 왜 이 드라마가 시즌 2까지 굳이 방영되고 있는지, 또 그로 인해 더럽게 재미없어지고 있는지를 즉각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폭스는 좀 시청률이 나온다 싶으면 여지없이 연장방영을 함으로써 걸작이 될 수 있었던 작품들을 말아먹는데 일가견이 있는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X-File> 시리즈를 들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시즌 7이었나 6이었나에서 '외계인의 음모'가 바야흐로 밝혀지던 그 순간의 쉣스러움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커튼을 촥 걷었더니 UFO가 날아다니고 레이저가 쀼뷰붕 하고 나와서 산천초목을 불태우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단편적인 미스테리를 살살 뿌려가며, 다 밝혀낼 수 없을만큼 거대한 음모가 이면에 흐르게 함으로써 형성되던 특유의 긴장감이 단번에 와장창 무너진 세계 드라마 역사상 가장 지랄맞은 명장면이었던 것이다.
이런 폭스 TV가 <프리즌 브레이크>를 그냥 내버려둘 리 없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이 작품은, 14화에서 스코필드가 의료실 바닥을 통해 형을 무사히 탈출시키면서 끝났어야 한다. 물론 제작진과 작가들은 그 이후의 스토리 전개에 대한 구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 와서 하는 소리일 뿐이다. 애초에 14화까지만 판매하기로 했던 계약이 늘어나면서, 'CUTE POISON'으로 녹여냈던 의료실 하수구는 12인치 파이프로 막혀버렸고, 스코필드와 탈출자 일당은 으악 씨발 하면서 잽싸게 감방으로 돌아와야만 했으며, 링컨은 전기의자에 앉았다가 살아나고 동생은 독방에서 미친척을 하는 등, 폭스리버 교도소 제소자 일동은 별 짓을 다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아브루찌가 제공하는 비행기를 무사하게 타버리면 시즌 2가 모두 해외에서 진행되어야 할 터이므로 탈옥범들은 뛰어서 도망간다. 어두컴컴한 들판에서 뭐 빠져라 뛰는 그들의 모습을 공중샷으로 잡으며 시즌 1은 끝났다.
탈옥범들을 제한된 공간에서 해방시키면서 이 시리즈는 그 자체로서 가지고 있던 스릴러로서의 미덕을 모두 상실해버리고 만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계획을 들고 왔지만, 그 속에 모래처럼 끼어드는 인간들로 인해 겪게 되는 시행착오와 위기들이 시즌 1을 이끌어간 극적인 동력이었다면 말이다. 변기를 뜯어내기 위해 교도소 리모델링 할 때 감춰뒀던 육각 렌치를 벤치에서 뽑아내는 것까지야 계획대로 할 수 있었지만, 제아무리 스코필드라고 해도, 그 자리의 터줏대감이 시비를 걸며 그것을 빼앗아가는 것까지 계산하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다른 사건들도 이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몸에 새겨진 문신에는 폭스리버 교도소의 하수구 도면과, 그 외에 탈옥에 필요한 온갖 사항들이 암기법처럼 축약되어 적혀있다.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형 링컨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성공해야 한다는 시간적 제약까지 맞물려, <프리즌 브레이크>는 시청자에게 마치 퍼즐을 풀어나가는 듯한 짜릿함을 안겨주었다.
문제는 그들이 감옥에서 나온 다음이다. '교도소 리모델링 공사의 실질적 총 책임자'였던 스코필드가 그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합당한 설정이지만, 그렇기에 그의 온 몸에 새겨진 문신은 그들이 담장을 넘어서는 순간 별 쓸모 없는 '문신'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볼쇼이 부즈'라던가, 자동차를 폭파시키기 위한 트릭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장방영을 위한, 즉 시즌 1과의 연속성을 어떻게든 확보해보기 위한 제작진의 눈물겨운 발악에 불과하다. 등짝 한가득 새겨진 파이프라인 도면은 그렇다고 치자. 그럼 가슴과 배에 있는 천사 문신은 대체 어디다 쓰는 물건이란 말인가?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짜맞추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요즘 호필이는 웃통도 벗지 않는다. 그게 눈에 띄면 시청자들이 눈치를 챌까 두렵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떨어진 긴장감을 보충하기 위해 제작진은 음모론에 무게를 확 실어주는데, 그 또한 애처롭기 짝이 없는 짓일 뿐이다. 음모론에 기대어 진행되는 작품은, 그 음모의 핵심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순간부터, 십중팔구 평범한 액션물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배가되는 공포심과 불안감이 음모론 장르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호필이는 티백이 들고 튄 돈에, 링컨은 금쪽같은 내 새끼 LJ에게만 관심이 있고, 엉뚱하게도 닥터 세라가 몸통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부통령이 범인이다'라는 것을 이미 시즌 1에서부터 시청자들이 알아버렸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호필이와 부통령 및 컴퍼니의 대결이 나와야 할 타이밍인데, 적어도 내가 본 지점까지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고 유타에서 유부녀가 사는 집 바닥에서 '그냥 파봤어'를 하고 있었으니 이 어찌 재미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불행하게도 이 드라마는 시즌 1이 끝나기 전부터 정서적인 호소력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14화까지 이 작품은, 탈옥 스릴러가 진행되는 폭스리버 교도소를 배경으로, 죄와 용서와 믿음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동시에 이끌어나가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LJ가 링컨과 화해하는 장면, 스코필드가 어렸을 때 형이 자신에게 그러하였듯이 믿음faith을 강조하는 모습 등은 그 자체로서 상당한 정서적 호소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탈옥물이기에 앞서, 처형을 눈앞에 둔 사형수가 인생을 정리하는 이야기였으며, 유아강간살해범과 살인범이 득시글거리는 감방에 들어온 한 엘리트 청년의 이야기였고, 그 형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생애 최악의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적인 드라마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도소장인 포프Pope가 음모 세력의 협박을 이겨내는 에피소드였다. 부인 말고 다른 여성을 사랑하게 된 그는, 결국 이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아들을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였거나, 혹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일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지금의 부인에게 철저하게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약점을 음모 세력은 물고 늘어지며, 형을 탈옥시키기 위해 계략을 꾸미고 있는 스코필드를 다른 교도소로 이감시키라고 협박한다. 하지만 스코필드를 이감시키는 것은 교도소장으로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거기서 그는 고해신부에게 찾아가 그 일을 고한다. 그리고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여, 부인에게 자신의 죄를 실토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엉뚱한 교도소에서 엄한 스코필드가 괜히 콩밥을 먹을 뻔한 위기가 바로 이렇게 극복된다.
미국 드라마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신교 국가라고 알려진 그곳에서, 이렇게 가톨릭적 감성을 제대로 짚어내는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이 감옥에 관련된 사람들은 마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라틴계인 수크레나 이탈리아인 아부루찌야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 슬럼가에서 자라난 백인인 링컨이 성당에 앉아있는 모습은 다소 이질적이다. 이것은 작가의 기본적인 제작 취지에서 비롯한 일로 보이는데, 연장방영으로 인해 본래의 의도가 훼손되기 전까지, 이 작품은 상당히 일관된 종교적 색체를 띈 구교 드라마이기도 했다.
대체 드라마에서 신구교의 감성적 차이가 뭐가 있냐고 묻고 싶은 사람은, 장르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위기의 주부들>에서 '죄'를 다루는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되짚어보기 바란다. <위기의 주부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결국 혼자 속으로 삭히고 반성한다. 반면 <프리즌 브레이크>에서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실토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이 유난히 부각된다. 감옥을 벗어난 순간 이미 기존의 미덕을 다 잃어버렸다고 한참 씹는 중이긴 하지만, 시즌 2에서 소매치기 소년이 자신을 유타까지 태워다준 카풀 여대생을 만나는 장면도 그렇다. 그런 종류의 'I'm sorry' 에피소드는 미국 드라마에서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사관 마혼이 자신의 약물 복용을 털어놓으며 고해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바로 그 앞에 배치됨으로써, 상투적이라면 상투적인 극적 장치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3.
이렇게 좋은 바탕을 깔아놓고 있으면서도, 특히 시즌 2에 접어들어 이 드라마는 제대로 된 깊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가족과 서로에 대한 보호와 신뢰 및 사랑, 죄를 저지르고 용서받는 과정의 쓰라림 등에 대해서라면, 감옥에서 나온 다음이어도 할 말이 사실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더없이 얄팍한 작품이 되어버린 것은, 스코필드의 잠재억압부족현상이라는 최고의 설정을 전혀 살려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작진은 그것을, 그가 티백의 손아귀에서 소매치기 소년을 구해내게 하는데까지만 활용하였고 그 이후로는 까먹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시피,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서 간절한 생각이 드는 건 결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며, 그것도 아주 끔찍한 종류의 것이다. 머리가 좋아서 이것저것 다 알 수 있을만한 지각을 가진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형을 탈옥시킨다는 목적으로 일부러 감옥에 들어왔다면 더더욱 그렇다.
스코필드는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을 이용해야 하고, 속여야 하고, 또 배신해야 한다. 이제야 이름이 기억난 소매치기 소년 트위너의 경우를 놓고 보자. 그가 감방 동료들을 배신했다고 하지만 사실 문제의 근원은, 트위너를 티백의 손아귀에서 건져낸 다음 손목시계를 훔치게 해놓고 수수방관한 마이클에게 있다. 아무리 정신병자라지만 헤이그웨어(맞나)를 두번이나 이용해먹고 버리는 모습 또한 결코 윤리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다. 게다가 스코필드는 처음부터 아브루찌를 발라먹을 작정을 하고 있었고 결국 그 꿈을,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루었다. 잠재억압부족현상으로 인해 측은지심을 느끼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인간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이러한 행위의 결과 앞에서 차마 말하기 힘든 쓰라림을 느껴야 마땅할 것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프로그래밍 된 인간이라는 설정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을 단편적으로 소비한 다음 싹 잊어버린 것처럼 작품을 진행하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스코필드는 그저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측은지심의 소유자일 뿐이며, 그나마 큰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일은 그에게 벌어지지도 않는다. 강을 건너다가 통나무에 다리가 낀 수크레를 버리고 가야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역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드라마는 점점 더 재미없어진다. 만약 스코필드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계속 고통을 느꼈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말 그대로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 선한' 본성을 적절히 억제해야만 하는 고통, 자신의 형의 생명이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하고 등쳐먹어야 한다는 모순된 상황에 스코필드는 더욱 처절하게 처박혔어야 한다. 시즌 1에서 그런 부분들이 아주 잠깐 나오지만, 사실 그러한 내적인 갈등과 전개는 작품의 무대가 갑자기 넓어져버린 시즌 2에서 더욱 절실한 것이었다.
4.
<프리즌 브레이크>가 시즌 2의 저조함을 벗어던질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해보인다. 이미 몸에 새겨진 문신을 없던 셈 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연장방영을 하고 싶었다면 제작진은 차라리, 스코필드와 일당이 감방에서 나갔으되 담장을 넘지는 못했다는 식으로, 온 몸에 새겨진 하수구 도면에 힘입어 감옥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처리했어야 한다. 울타리를 넘은 탈옥범들을 추적하는 수사관 마혼도, 그를 조종하고 있는 음모 집단도, 모두 너무도 상투적이며 극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위기에서 벗어난 형제간의 성격 갈등도, 제대로 불거지기 전에 둘이 찢어짐으로써 대충 봉합되었고, 링컨은 LJ를 너무도 쉽게 구해냈다. 스릴러로서의 기본이 이렇듯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가운데, 작품의 초반부에 나타났던 몇몇 호소력 있는 장면을 기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일 터. 결국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나는 드라마 제작진을 탓하기보다는 방송국을 욕함으로써 좀 더 쉬운 길을 택하게 된다. 제발 폭스는 괜찮은 드라마 연장방영하는 작태를 집어던져라. 호필이 문신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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