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블로그


admin | home | guest


 ○  경제학과 경제 논리, 그리고 황우석 사건 등  -  2006/06/23 15:33

'외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오면 우리는 부자가 된다'라는 일종의 억견doxa이 있다. 마치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일반적 '상식'처럼, 이 또한 사람의 직관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으며 실험 혹은 과학적 검증을 통해 반박되기 전까지는 사실이라고 굳게 믿어지고 있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아주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바로 저 '상식'에 근거하고 있는 이른바 '중상주의'를 논적으로 삼아,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현대 경제학의 토대를 닦은 책이다.

영웅적인 누군가가 외국에서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여 국내에 끌어옴으로써 우리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제 논리'의 상당수가 바로 저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경제학 자체가 저 신화에 대한 논박에서 출발하고 있으므로, 한국 사회의 '경제 논리'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을 비난하는 것은 유령을 쫓아내는 대신 고스트 바스터즈를 해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황우석 사건의 '경제 논리' 또한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줄기교' 신자들의 관심은 대부분, 황우석이 벌어다 주겠다고 약속한 수십조원의 '국익'에 있었다. 문제는 그 국익과 부가가치가 국가 경제에 공헌하는 방식이 무어냐 하는 것이다. 소비가 촉진되고 내수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외화가 벌려들어온다 해도 그것은 국가적으로 볼 때 그저 외환 보유고의 증가를 의미할 뿐이다. 지금 당장 한국이 시달리고 있는 내수 불황은, 아무리 외화를 많이 벌어오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학적 상식'이 현재 만연하고 있는 '경제 논리'를 압도하지 못하는 한, 황우석 식 대국민사기극은 언제라도 다시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경제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천박한 시선을 극복하려면, 경제학적 방법론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또 대중화되어야 한다. 과학적 방법론은 결국 대상을 탈신화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황우석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한국사회의 '과학 신화화'에 대응하는 방법 또한 결국 과학적 방법론의 보급일 수밖에 없듯이, 경제 신문의 1면을 매일 장식하는 그것들을 길들이는 방법은 결국 경제학을 통한 경제 논리의 탈신화화 뿐이다. 폴 크루그먼이 뉴욕 타임즈 칼럼을 통해 부시 행정부의 레토릭을 집요하게 해체하였듯이 말이다.

경제학과 과학 모두 '완벽하게' 객관적이지 않으며, 이데올로기에 오염될 수 있거나 오염되었지만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과학 그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는 젱가님의 리플 견해를 보고 이 포스트를 썼다. 글쎄, 위에 쭉 써놓은 바와 같이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황우석 사건은, 그곳에 동원된 논리마저도 경제학과 과학의 범주에 굳이 포함시키자면, 잘못된 경제학과 잘못된 과학이 어울어져 만들어낸 거대한 사기극이었을 따름이다. 그 사건을 통해 경제학과 과학의 진실성을 비판하는 것은, 체스터튼이 말한 바 "두 개의 검은 수수깨끼가 하나의 하얀 대답을 만드는Two black riddles make a white answer"것과 같은 넌센스 아닐까?


trackback address : http://rasugjuriha.8con.net/tt/trackback/126
답글 2006/06/23 18:36 x
글 잘읽었습니다. 서로 핀트가 조금 엇나가고 있군요. 노정태님의 글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제대로된' 경제학으로 '신화화된' 경제학을 바로잡아야한다, 이정도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황우석의 예는 적절치 않네요. 소위 '황빠'들의 국익논리는 교육 과 계몽을 통해 좀 완화시킬 수는 있었겠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 런 차원이 아닙니다. 창조론을 종교적으로 굳게 믿는 사람에게 진화론을 아무...
답글이 길어져 2006/06/24 14:25 x
게다가 횡설수설.. 뒷부분에 대해선 말이지.. 뭐라고 해야할까..? 네 말대로 비트겐슈타인은 안티철학자인데 굳이 철학의 맥락에 묶어두어야 하는 이유가 뭐지. <철학탐구>(라고 하냐? 후기 저작을) 가 네가 말한대로 가설/지점에서 출발한 "논증"이라는 데에 어쩌면 동의하지 못하겠어서. (그 자신도 그 책을 1번. 2번. 요렇게 써서 출판하는게 아니라 '완성'하고 싶어했는데 도무지 할 수 없었다잖어.) 내게는 <철학탐...

id   pass   homepage
secret  

치즈롤  -  (2006/06/23 20:54)   R | X 
오랜만에 오니 홈페이지가 싹 바뀌었넹..

비트겐슈타인을 배우고 나서 그런데 난 젱가님의 의견에 동의해야 할 듯..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회과학이 과연 가능할까? 더 나은 경제학적 방법론은 결국 또 다른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을까? 결국 사회과학방법론을 가장 잘 구현하는 사람은 그 이론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이론가 자신. 루이스 캐롤의 아킬레스와 거북이 이야기를 끝내려면 아킬레스의 공책을 덮든지 펜을 꺾든지 해야 하는 것처럼, 이 글에 링크된 젱가님 글에서대로, 타파해야 하는건 '주류경제학의 신화' 그러니까 경제학이론이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이 그랬잖아, "우리가 목적하는 명료성은 '완벽한' 명료성이다. 그러나 그 말은 결국 철학적문제들 역시도 '완벽히' 사라져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핀트가 더더욱 어긋난 듯도 싶지만, 어쨌든..
노정태  -  (2006/06/24 00:37)   R | X 
오랜만이네. 스킨 바꾼거야.

경제학 이론이 모든 사회적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는 발상 자체가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봐. 왜냐하면 과학은, 일단 탐색하는 범위를 철저하게 제한하고, 그에 대해 가설을 세운 다음 실험이나 관찰 등을 통해 검증해서 객관적인 지식을 얻어내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 행위이니까. 탐구 대상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과학이라고 볼 수 없지. 그런데 한정된 영역에서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적--한정된 재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한--행위를 아주 잘 설명해내거든. 그 대상이 하나의 단일한 시장, 예컨대 중고자동차 매매시장 같은 걸로 제한될 경우 주류 경제학은 행위자들의 선택에 대해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를 제공해. 하지만 한 국가의 경제 흐름이라거나, 국제적인 움직임 등에 대해서는 완벽한 정답을 내놓지 못하지. 그런데 상식적이고 양식있는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인정해. 경제 이론이 거시적인 차원에서 완벽하게 적용되는 일은 없다는 걸 말야.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관계에 대해서도, 맨큐는, 약 1~2년 정도는 상관 관계가 있다, 라고 말할 뿐이야. 그런 거시적 분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을만큼 경제학이 발전한 것은 아니거든. 경제학이 모든 문제를 다 설명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이야말로 경제학적 상식이야. 문제는 위에 글에서 말한 것처럼, 경제'학'대신 몇몇 그럴듯한 문구로 포장된 '경제 논리'를 들먹이는 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데올로기를 퍼뜨린다는 거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지. 그리고 그러한 과학적 방법론을 가장 잘 활용하고 보유하는 집단은 바로 주류경제학자들의 모임일 테고.

비트겐슈타인 인용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어.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을 다른 학문 분야들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보고 있었다는 점은 지적을 하고 싶다. 철학적 문제는, 그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이 언어를 잘못 이해하는 등의 오류를 저지름으로써 발생하는 가짜 문제, 라고 나는 기억하고 있거든. 그건 분명 경제학과는 다른 방향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김규섭  -  (2006/06/26 16:00)   R | X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와봄 .. '-';
힝~ 멋져 ..


< prev    1     ..59    60    61    62    63    64    65    66    67    .. 143     next >




recent comments
 프리스티/ 읽어주셔서 ..
 이 글 읽고 많이 반성..
 김규섭/ ㅋㅋㅋ는 이모..
 안녕, 노정태? 난 레..
 인터넷상의 언어에서 특..
recent trackbacks
 THE ANNOTATED AL..
 답글이 길어져
 답글
 JT복음
 노정태님께 : 재비판
favorite link
 Dilbert.com
 kurnik online games
 OALD home page
 Peanuts
 ★톰톰의 그루브★




16/55/58005

Creative 

Commons License

powered by tattertools.com
skin by stalla.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