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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전 내가 심리학부생이었을 때, 도서관 부서 직원이었던 안네는 모든 심리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할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매년, 거의 완벽한 정확성을 보여주면서, 그는 어떤 3년차 학부생이 1등급 졸업 학위(first-class degrees)를 받을지 예언했던 것이다. 안네는 그들의 에세이가 어떻게 채점되는지, 그들이 기존에 받아온 A학점이 얼마나 되는지, 혹은 그들이 IQ 테스트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 등(최종 점수를 예측하는데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정보들)을 알지 못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부서 도서관에서 얼마나 자주 눈에 띄였는가가 그가 아는 전부였다. 강의 노트를 읽고, 관련 잡지를 복사하며, 책을 빌리는 횟수. 그리고 안나가 자주 보았던 한 줌의 - 그 해의 다른 학생들보다 눈에 확 띌 정도로 자주 보이던 - 학생들이 1등급을 차지하게 되어 있었다. 대학에서의 성취도를 좌우하는 것은, 재능이 아닌 자기 단련이라는 원칙 하에, 안네는 일해왔다. 심리과학 분야에서 최근 10년간 출판된 연구 성과들은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심리학자인 안젤라 더크워쓰와 아틴 세릭먼은 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어떤 공립 학교의 8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낙엽이 지는 가을, 160여명의 어린이들은 IQ 테스트를 받고, 그들(과 그들의 부모와 교사들)은 피시험자의 자기 통제력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게 되었다. 당신은 욕망을 잘 억누를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것이다. 당신은 결과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까? 혹은, 당신은 일을 성취해나가는 과정에서 종종 기쁨과 즐거움을 느낍니까? 학생들은 그들이 만족감을 얼마나 뒤로 미룰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실생활 시험을 동시에 치루었다. 각 피시험자는 1달러가 들어있는 봉투 한 장을 받는다. 그것을 그냥 가질지 아니면 돌려주고 다음주에 2달러를 받을지를 그들은 결정할 수 있었다. 그들의 선택 결과는 세세하게 기록되었다. 봄이 되자 연구자들은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가을에 조사를 받았던 학생들의 성적을 검토한 후, 얼마나 영리한가, 자기 통제력이 있는가, 라는 두 가지 항목을 살펴보았다. 연구자들은 알고 싶었다. 학교 성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길게 봤을 때, 결국은 자기 통제력이 요건이라는 사실을 심리학자들은 밝혀냈다. 학적 성취도를 예측할 때, 어린이의 자기 통제력은 그 어린이의 지능보다 두 배 가량 중요한 것이었다.
... 더 이상의 번역은 도저히 귀찮아서 못하겠으므로 생략.
학교에서 같은 고시실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던 적이 있다. 이야기가 어찌어찌 흘러가다가,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선생 말을 잘 듣는다는 것과 똑같다'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누군가가 '난 선생 말 되게 안 들었는데'라고 대꾸하였고 그 시점에서 나는 그냥 닥치고 밥이나 먹기로 했다.
기왕 말을 꺼낸 김에 여기서 좀 더 풀어보자면, 그럭저럭 먹고 사는 집안 애들이 못살고 집에 시끄러운 일 많은 애들보다 공부 잘 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런 종류의 '의지'는 사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유의지'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안정적인 가정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자신의 것을 허무하게 짓밟아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내일도 태양은 떠오른다'처럼 자명하게 받아들여진다. 위에 번역한 부분에서 나왔던 실험 중 하나를 상기해보자. 한번 손에 넣은 1달러를, 잠시 포기하면 2달러가 된다. 그게 '이익'이 된다는 것은 원숭이도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피실험자가 실험자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이고, 어린이의 입장에서 그가 어른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는 그의 가정환경이 어땠는지와 상당한 연관을 지닐 수밖에 없다. 가령 어떤 집에서는 세뱃돈 받은 것을 부모님이 '보관' 해준다는 명분 하에 다 수거해서 고스톱 판돈으로 써버리고, 다른 집에서는 애가 용돈으로 쓰게 냅둬왔다고 해보자. 가정 A에서 자란 아이는 B에서 자란 아이보다, 앞서 나온 1달러 실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손에 들어온 것을 다시 어른에게 내어주면 결국 손해를 본다'는 체험을 매년 한두번 씩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그 아이에게 '왜 너는 그렇게 의지가 약하니, 순간의 욕망을 참지 못하고 더 큰 이익을 놓치니'라고 훈계하고 설교하는 것은 전혀 타당한 일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 아이에게는 세상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생에게 꼬박꼬박 대드는 반항아였다고 '추억'하는 고학력 학생들을 보면, 우습고 답답하다. 뻔히 알면서도 입으로 설명하려 들면 버벅거리기 시작하는 나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원문은 여기에 링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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