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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장집 인터뷰와 학자의 '내공'  -  2007/01/24 00:37

한국의 지식인 중 최장집만큼 객관적인 시각으로 안티조선 운동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노무현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의 전유물인 양, 어떤 광적인 대중운동인 것처럼 오해되고 있으나, 안티조선은 최장집의 논문의 사상성을 검증해보겠다던 조갑제의 만용과, 그것을 묵과하지 않고 들고 일어선 강준만 일당의 반발로부터 출발한 지식인 운동이다. 그 과정 속에서 최장집은 철저히 객체화되었고, 자의건 타의건 고려대학교 아시아문제연구소에서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가 노무현 정부와 그 업적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러므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개혁적'이라고 착각하던 수많은 지식인들이 '조선일보 나빠'라고 한마디 하며 되도 않은 참여의식에 쩔어가고 있을 때, 그 사건의 진정한 피해자는 미쳐 돌아가는 현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겨레와의 인터뷰(링크)에서 그는 노무현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와 다른 지식인들을 구분짓게 만드는 요소는, 그가 자기 판단의 이유와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의미, 헌법과 민주주의의 관계, 민주주의를 빙자한 권위주의의 발전 양태 등, 정치를 학적으로 이해함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개념들이 차곡차곡 정리된다. 이 인터뷰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2007년에 나온 한국어 텍스트 중 가장 훌륭하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다른 측면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인터뷰 자체가 아닌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위 두 문단에서 길게 늘여쓴 바와 같이, 현재 정치적 상황을 바라보는 최장집의 냉철한 인식은 그가 노무현의 당선까지 이어졌던 광풍에서 자유로웠고 그 열정을 온전히 연구에 쏟았기에 얻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독자가 칭송할 만한 최장집의 미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그의 냉철함, 지적인 성실함,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시민정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이러한 개별적인 장점을 '내공'이라는 단어로 싸잡아서 뭉뚱그리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 나는 특정인의 구체적인 발언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자의 저서나 발언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 자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 인터뷰를 끝까지 정독하고 나자, 한국 사회의 문제에 관심이 많고 사회 평균치보다는 많은 글을 읽는 누군가가 '크, 역시 최장집의 내공!'따위 소리를 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고, 비록 허수아비 논증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도 그런 지점에 대해 한마디 하고 넘어가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이른바 '내공론'은 학적 언어가 생산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문법적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스포츠맨의 우열을 묘사할 때에도 쓸모가 없을 만큼 뭉툭하고 포괄적인 언어를 이용하여 지식인을 평가한다는 것은 망치로 반도체를 수리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넌센스다. 우리는 어떤 운동선수의 탁월함을 묘사할 때, 가능한 한 그가 가진 기술적 측면을 세세하게 기술한다. 가령 하이킥을 날릴 찬스를 이끌어내는 크로캅의 복싱 스킬이라던가, 스탠딩 다운 상태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효도르의 위기 관리 능력이라던가. 크로캅의 카리스마나 효도르의 무표정한 포스 운운하는 것은 방금 격투기 체널을 튼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고, 일반적으로는 그 바닥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안목이 늘수록 해당 경기나 선수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비평을 할 수 있게 된다.

'내공론'에는 바로 이러한 구체성이 완벽하게 결여되어있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이 쉽게도 말한다. 마르크스의 내공, 월러스틴의 내공, 하버마스의 내공. 포퍼와 비트겐슈타인의 논쟁도 그러한 시각 앞에서는 졸지에 강호의 고수들, 즉 깡패들의 장풍 시합으로 변질되어, 나름의 논리와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그들의 섬세한 언어는 죄다 '아도겐'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학자들과 논쟁의 본질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의 인문돌이도 물론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앎이 삶의 에티튜드로 변환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결과 '내공'이라는 단어가 횡횡하는 한국어 속에서 학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그 벽에 부딛치고 만다는 데 있다.

'인문학의 위기'를 둘러싼 논의에 대해 이 기회에 한마디 첨언하자면, '내공론'으로 대표되는 한국 인문학 소비자들의 천박한 학문 인식 또한 현재의 사태를 이해하기 위한 기제로 제시되어야 한다. '내공'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우리는 학자의 인생과 학문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개별적으로 판단 비판하는 법을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 인문학에 대한 한국어 화자들의 이해 수준이 늘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은 그런 면에서 당연한 일이다. 경기 시간 내내 임요환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임요환 팬(스타크래프트가 아닌)이 과연 경기를 꿰뚫는 안목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학자의 학문적 내용을 검토할 만한 지식과, 지식 이전에 감정적으로 덤덤해질 수 있는 정서적 평정을 갖지 못한 독자가 인문학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여 향유할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넌센스이다. '내공론'은 텍스트에 대한 정밀 독해를 방해하는 언어적, 이데올로기적 장애물인 것이다.

'내공론'은 학자들간의 상호관계와 지식이 생산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큰 오해를 불러온다. 한 학파를 무림의 문파와 등치시킴으로써, 인문돌이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만을 '고수'로 인정하고, 그러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세부적인 분야에서 논문을 쓰고 연구를 진행한 수많은 학자들을 무협영화의 엑스트라로 간주한다. 이따위 시각으로 학계를 바라보면 국내 학자들의 업적이 눈에 찰 턱이 없다. 아무리 최장집이 날고 뛰어봐야 데이비드 하비의 '포스'를 이길 수는 없잖은가. 헌데 이런 식의 문법적 착각은 꽤나 빈번하게 이루어져서, 우리의 인문돌이들은 더 밝고 뜨거운 전구를 향해 날아가는 불나방으로 화하곤 하는데, 그게 바로 웹상에서 돌출하는 '맑빠'들의 발생 원인이 아닐까 싶다. 좌파라는 자의식을 가진 소년소녀들이 더 강한 포스를 찾다가 결국 '맑스'로 향하게 된다는 뜻이다.

최장집으로 돌아와보자. 그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 탁월한 인터뷰는 그가 현 정권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자신의 연구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뿐, 무슨 심후한 내공을 토해낸 사자후는 아닌 것이다.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한국 인문학 소비자 중 상당수가 '내공론'의 오류에 빠져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지적 정서적 천박함이 '인문학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원인 중 하나라고 추측한다.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빠져나가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파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내공'이라는 단어를 추방하는 것을 그 첫 단계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2007년 1월 23일 오후 9시 17분 작성.


* 링크되어 있는 인터뷰를 읽지 않은 사람은 지금이라도 꼭 정독할 것.

* '인문돌이'라는 표현에는 다소 비하하는 어감이 담겨있으나, 특정인을 지목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포함하여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어떤 경향성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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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섭  -  (2007/01/24 15:53)   R | X 
인터넷상의 언어에서 특히 구체성 없이 '내공', '포쓰 후덜덜' 'ㄷㄷㄷㄷ' 하는 식의 억지로 대상에게 아우라 뒤집어씌우기(??)가 더 활개를 치고 또 전염이 쉽게 되는 듯함.. 웃기면 무조건 'ㅋㅋㅋ' 이런 식으로 천편일률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무관하진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되는데.. 말이 되나?
이상한 모자  -  (2007/01/24 19:17)   R | X 
안녕, 노정태? 난 레빠야. 받아라, 아도겐!
노정태  -  (2007/01/25 12:51)   R | X 
김규섭/ ㅋㅋㅋ는 이모티콘처럼, 제한된 활자를 통해 자신의 감정이나 반응 등을 표현하려는 방식이라고 생각해. 대상에게 아우라를 뒤집어씌운다는 맥락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

이상한 모자/ ←↓→ + A 를 입력했구나.
프리스티  -  (2007/01/28 00:02)   R | X 
이 글 읽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노정태  -  (2007/01/29 18:01)   R | X 
프리스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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