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블로그


admin | home | guest


 ○  논의의 전제  -  2005/08/12 13:47
노바리 님은 내 글이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바를 간과하고 있다. 나는 단 한번도 카우치의 스트리킹에 의해 성폭력이 발생해도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의 행위가 성폭력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절대 배재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그러한 전제가 있었기에 카우치의 스트리킹을 테러라고 규정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내 주장의 기본 논조는 다음과 같다. 카우치의 스트리킹 성폭력은, 기왕 벌어진 '엎질어진 물'이니,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식으로 목소리를 드높이지 말고 다만 그것이 지시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모든 범죄에 대해 저런 '엎질러진 물'론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테러와 같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결고리를 명확하게 하기 어렵고, 또 사회적 의미를 찾아내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영역에 있어서, 특정 범죄는 차라리 '엎질러진 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논의의 전제는 또 어긋난다. 노바리 님은 테러를 정치적인 행위로 바라보고, 그리하여 그 수단에서 좀 더 기발하고 타인에게 위해를 덜 끼치는 방식이 선택된다면, 하는 아쉬움을 품는 듯 한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해석되어야 마땅한 행위라고 해도 테러의 본질은 범죄에 불과하다. 범죄는 범죄일 뿐이며, 그에 대해서는 합당한 처벌을 내리면 그만이다. 물론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모든 이에게 반성과 성찰 그리고 숙고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나, 그 범죄자들이 지금껏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선한 도덕적 가치를 머금고 있으리라(혹은 그러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부터가 나에게는 넌센스라고 느껴진다. 혼동하지 말자. 저 하늘을 누비는 한 마리 독수리를 바라보며 우리가 웅혼한 기상을 느낀다고 해서, 그 독수리가 본질상 웅혼한 동물일 리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테러범은 범죄자일 뿐이고, 다만 그들을 바라보며 숙고해야 하는 것이 사회인들의 책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스트리킹을 '사회적 문제 제기'라고 바라보는 것부터가, 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이 얼빵한 펑크 락커들이 대체 무슨 문제를 (주체적으로) 제기했단 말인가. 그들은 단지 벗었고, 뛰었다. 다만 그들을 좀 더 구조적인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그 방법이 꼭 성폭력이어야 했는가'라는 질문은 정말 맥락에 와닿지 않는다. 이들은 가장 억압받는 사람들을 볼모로 잡고 자신들의 짓눌린 처지를 강변하지 않았다. 단지, 그냥 놀던 대로, 혹은 평소 하던 것보다 좀 더 심한 짓을 벌였을 뿐이다.

그러니 그 문화 자체의 남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다의 방식은 너무 포괄적이었고, 또 그만큼 안이했다. 음악을 하는 이들이 '음악캠프'에 나와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적어도 '문화적' 분석을 한다고 했을 때에는, 그 판에서 담론이 움직이는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트랙백으로 걸려 있는 치즈롤 님의 견해에 공감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현 사태를 놓고 '남성 중심주의가 또 도드라졌다'라고 말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나로서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런 맥빠지는 발화 행위는 정작 논의가 시작되지도 않은 지점을, 여전히 간과하고 있다.

이상한 모자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바와 같이, 여기서 '여성운동 이래서는 안된다' 따위 소리로 해석될 여지를 보이기 시작하면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나는 그쯤에서 일다의 그 기사에 대한 비판을 그만 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전제를 명확히 해야겠다는 애초의 목적을 모두 달성한 상태이며, 이 건에 대해 더이상 논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 카우치의 스트리킹이 '항시적인 차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노바리 님의 해석에 대해 반박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그다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 뭘 어쩌자는 말인가?'라는 식의 퉁명스러운 대답으로 들릴 가능성이 너무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명확히 해두고 싶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계의, 혹은 락 음악과 그것을 둘러싼 문화적 자장의 구조적 모순을 짚어내는 쪽으로 담론 구성을 한다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의 대답을 제시하는 것도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사회적 차원의 논의는 결국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느냐, 혹은 그럴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갈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일다의 기사와 그에 대한 노바리 님의 해석을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rasugjuriha.8con.net/tt/trackback/77
노정태님께 : 재비판 2005/08/20 15:16 x
1. 논의가 어긋나는 것은, 서로 상대가 나의 전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여기는 데에서 시작하는 듯하다. 나는 정태씨가 지지한다고 밝힌 치즈롤님의 글 2번에 별 무리없이 동의하고 있다. 기실 ‘수동적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 해석자 및 재구성의 주체로..

id   pass   homepage
secret  



< prev    1     ..92    93    94    95    96    97    98    99    100    .. 143     next >




recent comments
 프리스티/ 읽어주셔서 ..
 이 글 읽고 많이 반성..
 김규섭/ ㅋㅋㅋ는 이모..
 안녕, 노정태? 난 레..
 인터넷상의 언어에서 특..
recent trackbacks
 THE ANNOTATED AL..
 답글이 길어져
 답글
 JT복음
 노정태님께 : 재비판
favorite link
 Dilbert.com
 kurnik online games
 OALD home page
 Peanuts
 ★톰톰의 그루브★




12/55/58001

Creative 

Commons License

powered by tattertools.com
skin by stalla.pe.kr